본문 바로가기

캄중일기 - 캄보디아 삽니다

캄보디아 여자들이 잠옷을 입고 돌아 다니는 이유

캄보디아에 지내다 보면 잠옷을 입고 시내를 활보하는 여성들을 자주 보게 된다. 왜 잠옷을 입고 밖을 돌아다닐까?

그 이유는 파자마로부터 시작한다.

파자마는 원래 인도와 페르시아 지방에서 남녀 모두 즐겨 입던 옷으로서, 허리에 졸라매는 끈이 있는 가볍고 느슨한 바지였다. 영어의 파자마(pajama) 혹은 불어의 피자마(pyjama)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하의를 뜻하는 '파이자마'에서 유래했다....(중략)...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파자마를 잠옷으로 사용한 것은 1870년 경부터이다. 인도에서 식민지 관리로 일하던 사람들이 귀국할 때 이 옷을 가지고 들어와서 입은 것이 유행을 타게 된 것이다. 

<<주경태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먼저, 경제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우리 돈으로 5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놀랍게도 상의와 하의가 한 세트인 가격이다. 거기다가 패셔너블(?)한 화려한 무늬도 있고, 원래는 더운 인도와 페르시아 지방에서 입었던 만큼 시원하고 헐렁하여 활동하기도 편하다. 

하지만 싸고 편한 옷이라고 패션에 민감한 여성들이 입고 다닌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옷은 신분과 지위, 재력 등을 나타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역사적인 이유도 있다. 

 

캄보디아는 1800년대 중반부터 1900년 중반까지 약 100년간 프랑스 식민시대를 거쳤다. 이때 파자마가 캄보디아에 처음 소개가 되었을 것이다. 이 당시 파자마는 지배계급이었던 프랑스인들이 집에서 입는 옷이었다. 서양 옷인데 가격도 저렴하고 편한 옷이니 현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여성들은 파자마를 받아서 입기도 했을 것이다. 아래 사진은 사진을 찍기 위해 제대로 차려입었지만, 그 당시 시골 여성들은 가슴을 거의 드러 내놓고 다닌 경우도 많았기에 프랑스인 자신들이 편하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라도 파자마를 주고 입게 했을 것이다. 

1900년대 캄보디아 여성 복장

그래서 파자마를 입고 다닌다는 것은 지배계층의 옷인 멋진 서양식 옷을 입고 다닌 다는 의미였으며, 여성의 입장에서는 지배계층과 같이 일한다는 의미도 되었다. 마치 지금의 우리가 외국계 글로벌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일한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 당시 여성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집에 있어도 집안일만 하는데, 똑같은 집안일을 하면서 숙식이 제공되는 멋진 저택에서 외국인들과 일하며 월급도 받으니 현재의 고액연봉의 전문직 여성과 비슷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런 배경이 있기에 '난 외국계 기관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여성이야'라고 뽐내며 집에서 입는 파자마를 밖에서도 자신 있게 입고 다니기 시작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서는 저렴하고 편한 외출복으로 인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캄보디아에서 파자마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100명이면 100명 다 여성이다. 파자마를 입고 다니는 성인 남성은 없다. 물론 아주 어린 남자아이의 경우 파자마를 입고 다니는 경우가 있지만 철이 든 남성이 파자마를 입고 다니는 일은 없다. 

 

한때 캄보디아 생활 버킷리스트로 파자마 입고 카지노 가기, 파자마 입고 클럽 입장하기를 생각했던 적이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파자마를 입고 다니는 사람은 중년 여성이나 시장 상인들 정도이다.

 

조금 더 일찍 버킷리스트를 달성했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잠옷 얘기를 하다 또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기회를 잡으려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